だろう
darou
だろう는 추측이 아니라 상대 앞으로 굴려 보내는 공이다
그림 말끝을 못 박지 않고, 공 하나를 상대 앞으로 살짝 굴려 놓는 느낌. だろう는 판단을 상대 앞으로 굴려 보내는 말, だ·です는 그 자리에 못을 박아 끝내는 말이다.
だろう 안에서 그림이 나타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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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으로 굴려 본 공
明日はたぶん晴れるでしょう。
ashita wa tabun hareru deshō
내일은 아마 맑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보관이 '맑음'이라 적힌 공을 화면 앞으로 살짝 굴려 놓고 손을 떼는 그림
일기예보가 늘 でしょう로 끝나는 이유다. 단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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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굴려 보는 공
彼はもう知っているだろう。
kare wa mō shitte iru darō
그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혼잣말이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공을 벽 쪽으로 굴려 보내는 그림
だろう는 반말, でしょう는 정중한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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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앞에 굴려 동의 구하기
長旅で疲れたでしょう?
nagatabi de tsukareta deshō
먼 길 오느라 피곤하시죠, 하고 짚어 주는 말이다.
먼 길 온 사람 발치까지 공을 굴려 놓고 고개를 끄덕여 주기를 기다리는 그림
끝을 올려 말하면 상대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한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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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손에 얹어 두는 공
この書き方でよろしいでしょうか。
kono kakikata de yoroshii deshō ka
이렇게 쓰면 괜찮을지 조심스럽게 여쭙는 말이다.
서류를 두 손으로 받쳐, 공을 놓듯 상대 손바닥 위에 살며시 얹어 놓는 그림
でしょうか는 ですか보다 한 발 물러선 정중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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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려 뒀던 공을 다시 가리키기
だから言っただろう。
dakara itta darō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하는 말이다.
아까 굴려 두었던 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있잖아' 하는 그림
だろう?로 밀면 따지는 말투가 된다. 윗사람에게는 쓰지 않는다.
한 그림으로
だろう는 추측의 세기가 아니라 공을 어디로 굴리느냐입니다. 안갯속으로 굴리면 일기예보의 でしょう가 되고, 혼자 벽 쪽으로 굴리면 혼잣말이 됩니다. 상대 발치까지 굴려 놓고 기다리면 동의를 구하는 말이 되고, 두 손으로 받쳐 손바닥에 얹으면 でしょうか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이 되죠. 아까 굴려 둔 공을 다시 가리키면 言っただろう가 되고요. 굴리는 것은 언제나 같은 공 하나, 다른 것은 그 공이 멈춰 서는 자리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