就/才
jiù / cái
就와 才는 시간이 아니라 내 기대를 잰다
그림 시간 자 위에 이쯤이면 되겠지 하는 눈금이 하나 찍혀 있다. 그 눈금 앞에서 끝나면 就, 눈금을 지나쳐 버리면 才다. 已经은 벌써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만 말하고, 才는 왜 이제야냐는 서운함까지 얹는다. 같은 열 시라도 已经十点了는 시간을 알리고 十点才到는 늦었다고 나무란다.
就/才 안에서 그림이 나타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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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이른 시각
他七点就到了。
tā qī diǎn jiù dào le
그 사람 일곱 시에 벌써 와 있었어요.
여덟 시 약속인데 일곱 시에 이미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펴 들고 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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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늦은 시각
他十点才到。
tā shí diǎn cái dào
그 사람 열 시에야 왔어요.
식어 버린 밥상 앞에 앉아 있는데 열 시가 되어서야 현관문이 열리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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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적은 수고
我看一遍就记住了。
wǒ kàn yí biàn jiù jì zhù le
한 번 보고 바로 외웠어요.
책을 한 번 덮고 눈을 감은 채 그 페이지를 그대로 외워 내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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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많은 수고
我看了三遍才记住。
wǒ kàn le sān biàn cái jì zhù
세 번이나 보고서야 외웠어요.
같은 페이지를 세 번째로 다시 펼쳐 읽고 나서야 책을 덮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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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과 결과 사이에 틈이 없음
你来了我就走。
nǐ lái le wǒ jiù zǒu
당신이 오면 저는 바로 갈게요.
문이 열리고 그 사람이 들어서는 그 순간 이미 가방을 들고 반쯤 일어선 그림
이 자리에는 才가 올 수 없다. 才는 이미 지나간 일에만 붙는다.
한 그림으로
일곱 시에 벌써 와 있는 것도, 한 번 보고 외운 것도 내가 그어 둔 눈금 앞에서 끝난 就입니다. 열 시에야 온 것도, 세 번을 봐야 외운 것도 그 눈금을 지나쳐 버린 才고요. 마지막 문장에서는 눈금이 시계가 아니라 조건 위에 찍혀 있어, 네가 들어오는 순간과 내가 일어서는 순간 사이에 틈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두 글자는 시계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내 기대라는 눈금에서 얼마나 어긋났는지를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