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는
eun / neun
왜 ‘내가’가 아니라 ‘나는’이라고 할까
그림 말을 꺼내기 전에 무대 조명을 하나 켜는 느낌. '지금부터 이 얘기다' 하고 비추면, 조명 밖은 저절로 어두워진다. '은/는'은 무대 전체에 조명을 켜 무엇을 이야기할지 정하는 것, '이/가'는 여럿 중에 딱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어내는 것.
은/는 안에서 그림이 나타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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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켠 자리
저는 오늘 야간 근무예요.
jeo-neun o-neul ya-gan geun-mu-ye-yo
지금부터 할 얘기의 주인공은 나라고 먼저 알려 준다.
무대에 선 사람이 조명을 끌어와 자기 발밑에 세우고, 뒤쪽 사람들은 어둠 속에 그대로 남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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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두 개
커피는 있는데 우유는 없어요.
keo-pi-neun in-neun-de u-yu-neun eop-seo-yo
커피 쪽은 밝고 우유 쪽은 어둡다 — 둘을 맞세운다.
조명 두 개가 각각 가득 찬 커피 주전자와 바닥이 드러난 우유통을 비추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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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비춘 것
그 서류는 과장님이 가져갔어요.
geu seo-ryu-neun gwa-jang-ni-mi ga-jeo-ga-sseo-yo
서로 이미 아는 그 서류를 다시 화제로 올린다.
아까 한 번 비췄던 그 서류 위로 조명이 다시 돌아와 앉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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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옮김
오늘은 좀 쉬세요.
o-neu-reun jom swi-se-yo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 하루로 화제를 옮긴다.
달력 위를 훑던 조명이 다른 날들을 지나쳐 '오늘' 칸 하나에만 멈춰 서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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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비춤
한국은 여름에 비가 많이 와요.
han-gu-geun yeo-reu-me bi-ga ma-ni wa-yo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두고 늘 그렇다고 말한다.
조명이 확 넓어져 지도 위 한국 전체를 한 번에 덮는 그림
'한국이 비가 와요'는 지금 창밖 얘기, '한국은'은 늘 그렇다는 얘기다.
한 그림으로
'은/는'은 뜻이 아니라 조명 스위치 하나입니다. 내 발밑을 비추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되고, 조명을 둘로 나누면 커피 쪽은 밝고 우유 쪽은 어두워지며, 아까 비췄던 서류로 조명을 되돌리면 '그거 말인데'가 되죠. 달력 위에서 오늘 칸으로 조명을 옮기면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이 되고, 조명을 확 넓혀 한국 전체를 덮으면 늘 그렇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래서 '은/는'이 붙은 자리에는 언제나 여기를 보라, 나머지는 어두워도 좋다는 손짓이 따라옵니다.